작성일 : 2022.04.28 22:28 작성자 : 최지연 (air24jychoi@gmail.com)
학창 시절, 서재에 꽂힌 책들을 뒤적거리다 만 원짜리 지폐를 발견한 적이 있다. 아버지의 비상금을 발견한 것이다. 그 후 용돈이 부족할 때면 서재의 책을 수색하곤 했다. 처음엔 몰랐다. 그저 소풍날 보물찾기하는 심정이었다. 공(空)돈 찾기에만 혈안이 되었었는데 비상금이 숨겨진 쪽은 언제나 격언이 담겨있는 쪽이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이번 칼럼에선 아버지가 찜하신 수많은 격언 중에서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를 인용하고 싶다. 프랑스의 대작가 앙드레 말로의 명언이다.
공(空)돈.
신입 시절, 회사에서 지급하는 퍼듐(Perdiem)은 딱 그런 의미였다. 월급 통장엔 포함되지 않는 비공식적인 돈 같은 그런 느낌 말이다. 퍼듐(Perdiem)의 사전적 의미는 ‘일일 경비’이다.
항공사에선 승무원 해외 체류 시, 식비 개념으로 퍼듐을 지급한다. 물론 지금은 퍼듐 통장에 따로 입금되지만, 당시엔 운항 브리핑이 끝나면 팀원 중 한 명이 퍼듐을 현금(달러)으로 수령해 동승하는 승무원들이 나누어 가지는 시스템이었다. 상황이 그러하니 공짜처럼 느껴졌을 수 밖에.
퍼듐은 식사비 명목으로 현지 물가에 맞게 산정된다. 지금의 퍼듐 금액은 나의 쥬니어 시절의 퍼듐 금액과 별반 차이가 없는 듯하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객실승무원의 퍼듐이 월급 상승 비율과 현지 물가 상승 비율 등과 비교해 턱없이 적게 상승한 것이다. 그렇기에 당시 퍼듐은 객실승무원의 쏠쏠한 수입원이었다.
하지만 내겐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해외 체류 시, 퍼듐을 가지고 식사뿐 아니라 투어도 하고, 쇼핑도 했기 때문이다. 공돈이라는 인식이 강했기에 퍼듐은 거들 뿐, 월급을 더해 다음 달 카드값이 펑크 나지 않는 한도에서 넉넉하게 소비했다. 그것을 젊음의 특권이라 믿었었다. 승무원 대부분이 나와 대동소이했다고 생각한다. 동기 두 명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둘 다 특이한 동기였다. 둘 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친구도 아닌데 쇼핑은 절대 하지 않는 검소한 친구들이었다. 아니 검소하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을 것 같다. 쇼핑만 하지 않았을 뿐, 퍼듐을 한 명은 주식 투자에, 또 한 명은 여행에 소진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한 명은 건물주님이 되었고 또 한 명은 두 권의 책을 출간한 여행 작가가 되었다. 퍼듐이 건물로, 책으로 변모한 것이다. 그러면 퍼듐으로 샀던 저의 명품 가방은 어디로 갔을까? 퍼듐은 명품 가방에서 더는 나아가지 못하고 오래전 수명을 다하고 말았다.
나와 두 동기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두 동기들은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라는 격언에 어울리는 이들이었고, ‘세상에 공(空)은 없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퍼듐이라는 명목으로 매 비행마다 쥐여주는 푼돈마저 허투루 여기지 않고 그것을 본인의 꿈을 위해 투자했던 것이다. 남의 시선과 순간의 만족이 아닌 본인의 꿈에 투자한 사람들이었다.
(아버지의 비상금 = 공돈)만 탐하지 말고 가슴속에 격언을 새길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오는 요즘이다.
‘내일은 없다’는 투로 ’현재를 SNS에 포장‘하며 살아가는 요즘 친구들에게 ‘너희도 나처럼 후회한다.’라고 충고하면, 꼰대 소리 들을까? 어쩌면 나의 아버지도 딸아이가 잔소리한다고 쏘아붙일까 두려워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대놓고 못하고 간접적으로 남겼는지 모르겠다. 본인의 비상금을 까먹으면서까지...
(사진=김주희 경남도립남해대학 항공운항과 교수)
김주희
현 경남도립남해대학 항공운항과 학과장
현 한국관광연구학회 이사
현 한국문화산업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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